뚱뚱한 그녀, 혹은 비둘기에게
이현승
물론 나는 새가 무거워서 날지 못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아.
문젠 무게가 아니라 그 무게를 들어올리려는 의지에 있어.
도도는 멸종되었고 닭은 사육되고 있어. 가령 {길버트 그레이프}라는 영화에서 물풍선처럼 부푼 엄마가 일층에서 이층으로 올라가는 것도 나에겐 작은 비행처럼 느껴지는 거야.
그녀의 발 밑 금방이라도 으스러질 듯 신음하던 목조계단보다 먼저 그녀는 죽어버렸지만 그것은 그녀가 감행한 일생의 모험,
낯설고 두려운 공기 위로 사뿐히 자신의 전존재를 던지는 비행처럼 느껴지는 거야,
그녀를 운구하기 위해 곤도라와 인부가 동원되었지만, 애초에 외출을 그만두고 정신없이 먹어대기 시작한 것은 다 슬픔 때문 아니었을까? 그녀의 운구가 빠져나온 집도 화장되지만 ……
그러니까 나는 그녀도 새는 새라고 생각해. 뚱뚱한 식욕보다 무겁게 그녀를 내리 누르는 중력, 슬픔.
경동시장통 신호등 위에 앉아 지나가는 차량 위에 하릴없이 똥이나 흘려대는 비둘기들.
가학의 도시에서 나보다 먼저 시민권을 얻은 저 권태의 새, 폭력으로부터 도망치는 길 그건 타락해가는 자신을 용서하는 길 뿐이야.
숙취의 아침 슈퍼마켓에서 내가 해장으로 빵봉지를 뜯을 때, 조건반사적으로 내 쓰레빠 주변으로 딴죽거리며 모여드는 너희들에게 나는 몇 조각 빵덩어리를 던져주며 생각해.
아주 오래 전 날기를 그만 둔 나의 조상님들을,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연신 새로운 빵봉지를 뜯고 있을, 등에 퇴화한 날개자국이 흉칙하게 남은 내 모습을.
미친 듯 고함치는 햇볕 속에서 간신히 간신히 광기로부터 벗어나 있는, 조금씩 배가 나오려고 하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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